
지난 9월 8일 공개된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5에서 한국 학생의 읽기 점수는 501점이었습니다. 2000년 첫 참여 이후 가장 낮은 점수이고, 3년 전보다 14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는 지난 1년 동안 책을 한 권 이상 읽거나 들은 학생이 94.6%였습니다. 조사 대상과 시기가 달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읽는 학생은 거의 전부인데 읽는 힘은 역대 최저라는 결과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두 숫자는 서로 다른 것을 재고 있습니다.
가장 크게 떨어진 과목은 읽기
한국은 이번에도 상위권을 지켰습니다. OECD 38개국 중 읽기는 1~9위, 91개국 전체로는 3~13위입니다. 다만 2022년과 비교하면 과학이 2점, 수학이 5점 내려간 데 비해 읽기는 515점에서 501점으로 14점 떨어져 낙폭이 가장 컸습니다. 세부 지표도 같은 방향입니다.
- 읽기 기초 수준에 못 미친 학생: 14.7% → 17.8%
- 고난도 글을 이해하는 5수준 이상 학생: 13.3% → 10.3%
- 최고점이던 2006년(556점) 대비: 55점 하락
한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OECD 평균도 2015년 489점에서 이번에 461점으로 28점 낮아졌습니다. 다만 한국은 잘 읽는 학생이 줄고 기초에 못 미치는 학생이 늘어난, 양쪽 끝이 함께 움직였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94.6%라는 숫자가 가리는 것
국민독서실태조사의 독서율은 일반도서를 1년에 1권 이상 읽거나 들었는지를 묻습니다. 종이책은 물론 전자책과 오디오북도 포함하고, 교과서·참고서·만화는 제외합니다. 이 기준에서는 1년에 한 권만 읽어도 읽은 학생입니다. 94.6%는 독서 습관의 깊이가 아니라 최소한의 문턱을 넘은 비율입니다.
독서율은 읽었는지를 묻고, PISA는 이해했는지를 묻습니다.
권수로 독서를 관리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독서록, 독서 인증, 다독상처럼 눈에 보이는 지표가 권수이면 아이도 부모도 권수를 채우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얼마나 이해하며 읽었는지는 기록에 남지 않으니 관리 대상에서도 빠집니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성급한 독자
OECD는 이번 평가에서 '성급한 독자'라는 유형에 주목했습니다. 읽기 유창성 평가에서 글을 충분히 처리하지 않고 매우 빠르게 답을 내 틀리는 학생을 말합니다. OECD 평균으로 2018년 6.6%에서 2025년 11.4%로 늘었습니다. OECD는 같은 기간 읽기의 디지털화, 긴 화면 사용 시간, 즐거움을 위한 독서의 감소가 함께 나타났다고 짚었습니다.
국내 조사에서도 같은 징후가 보입니다. 올해 7월 보도된 조사에서 초·중학생의 30.6%가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뜻을 확인하지 않고 넘어간다고 답했습니다. 짧은 영상은 넘기는 속도에 맞춰 설계돼 있고, 그 속도에 익숙해진 눈은 긴 글에서도 같은 속도로 움직입니다. 책을 펼쳐 놓고도 훑어 넘기면 읽은 권수만 늘고 이해는 늘지 않습니다.
집에서 바꿀 수 있는 것
학교의 독서 교육 확대는 시간이 걸립니다. 가정에서 지금 바꿀 수 있는 것은 읽는 방식입니다.
- 다 읽은 뒤 "한 문장으로 말하면 뭐야?"라고 묻습니다. 정답을 확인하려는 질문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말로 정리해 보게 하는 질문입니다.
- 모르는 단어는 그 자리에서 확인합니다. 아이가 뜻을 짐작해 말해 보게 한 뒤 사전으로 맞춰 보면 됩니다.
- 쉬운 책만 반복하지 말고, 조금 버거운 책을 섞습니다. 조병영 한양대 교수는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어려움과 복잡도를 갖춘 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책 읽는 동안에는 스마트폰을 다른 방에 둡니다. 알림 하나가 오는 순간 읽기는 훑기로 바뀝니다.
이 네 가지를 한꺼번에 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아이가 읽은 책 한 권에 대해 그 내용을 아이 입으로 한 문장으로 말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권수를 세는 일을 멈추고 이해를 확인하는 일로 옮기는 것, 이번 PISA 결과가 가리키는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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