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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물가상승률도 못 따라간다는데 그냥 두고 있었다"… 400조 퇴직연금, 85%가 이 상품에 몰려 있었다

by 디그놋 2026.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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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계좌를 가진 직장인 대부분은 자신의 돈이 어디에 들어가 있는지 모릅니다. 매달 월급에서 빠져나가고, 회사가 알아서 넣어주는 돈이니 신경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무관심의 결과가 숫자로 드러났습니다. 디폴트옵션 제도 아래 쌓인 퇴직연금 적립금 53조 원 중 85%가 정기예금 같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고, 이 상품의 1년 수익률은 2.6%로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 2.1%를 겨우 웃도는 수준입니다. 세금과 수수료를 빼면 사실상 실질 마이너스에 가깝습니다. 같은 제도 안에서 적극투자형을 선택한 계좌는 3년 누적 수익률 123%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제도, 같은 3년, 결과는 이렇게 갈렸습니다.

방치는 설계된 결과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별도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사전에 지정된 상품으로 자금이 자동 편입되는 제도입니다. 2023년 7월 전면 시행됐고, 취지는 '방치된 퇴직연금'을 줄여 장기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 디폴트옵션 가입자 734만 명 중 79%가 초저위험 안정형을 선택
  • 안정형 적립금은 정기예금 등 원리금보장 상품에 집중
  • 방치 시 6주 뒤 자동으로 안정형에 편입되는 구조

제도가 가입자의 선택을 유도하는 방식 자체가 안정형으로 쏠리게 설계돼 있습니다. 별도 지시가 없으면 가장 보수적인 상품으로 자동 편입되고, 한 번 편입된 이후에는 다시 바꾸지 않는 이상 그대로 유지됩니다. '방치'가 아니라 '방치되도록 설계된 기본값'입니다.

격차는 이미 숫자로 드러났다

수익률 격차는 추상적인 우려가 아니라 이미 확정된 결과입니다. DC형(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의 5년 평균 수익률은 2.4%에 그쳤고, 원리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 상품 사이의 수익률 격차는 평균 7배에 달합니다. 위험자산 투자 한도는 70%로 정해져 있지만, 대다수 가입자는 이 한도를 전혀 쓰지 않고 원금 보장 상품에 머물러 있습니다.

400조 원이 넘는 국내 퇴직연금 시장 전체를 두고 '잠자는 퇴직연금'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장기 복리 효과를 기대하고 만든 제도인데, 정작 대부분의 돈이 복리 효과가 거의 없는 상품에 30년 가까이 머무르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왜 아무도 바꾸지 않았나

이 구조가 유지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가입자의 수익률과 무관하게 적립금 규모에 비례한 수수료 수익이 발생합니다. 상품이 안정형에 머물든 적극투자형으로 이동하든, 회사가 얻는 수수료 구조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반면 위험자산 비중을 늘리도록 적극적으로 안내했다가 시장이 하락하면 민원과 책임 소지가 커집니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가입자를 안정형에 그대로 두는 쪽이 합리적인 선택이 됩니다.

정부의 감독 방식도 이 흐름을 방치했습니다. 디폴트옵션 상품에 대한 전면 평가 체계가 없었고, 수익률이 낮은 상품이라 해도 시장에서 걸러지지 않고 계속 판매됐습니다. 위험자산 70% 한도라는 일률적인 규제도 채권혼합형이나 타깃데이트펀드(TDF) 편입 방식에 따라 실제 위험 노출도가 달라지는 만큼, 규제의 실효성 자체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지금 확인해야 할 것들

고용노동부는 올해 처음으로 디폴트옵션 상품에 대한 전면 평가에 들어가 부실 상품을 변경하거나 시장에서 퇴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늦었지만 방향은 맞습니다. 다만 제도 개선을 기다리는 사이에도 개인의 퇴직연금은 매달 쌓이고 있습니다.

퇴직연금 앱이나 홈페이지에서 본인의 적립금이 원리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 중 어디에 얼마나 배분돼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디폴트옵션에 가입돼 있다면 어떤 유형이 자동 선택돼 있는지, 이를 변경할 수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험자산 70% 한도 안에서 TDF나 혼합형 펀드로 일부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장기 수익률 차이는 크게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은퇴 시점까지 남은 기간이 길수록 이 격차는 복리로 누적됩니다. 회사가 대신 넣어주는 돈이라고 해서 남의 돈처럼 다뤄서는 안 됩니다. 최소 1년에 한 번은 본인의 퇴직연금 운용 현황을 직접 들여다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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