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상포진 백신은 만 50세 이상 성인에게 접종이 권고됩니다. 그런데 이 백신은 국가가 무료로 놔주는 예방접종 목록에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같은 병원, 같은 나이의 어르신이 인플루엔자와 폐렴구균 백신은 무료로 맞고, 대상포진 백신 앞에서는 수십만 원짜리 가격표를 받아 듭니다.
대상포진 백신을 무료로 맞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는 지역이 지원 사업을 하는 곳이면 그렇습니다. 옆 동네로 주소가 갈리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국가가 정한 접종은 아닌데, 지방자치단체가 제각각 메우고 있는 구조입니다.
질병관리청은 이미 고령층 대상포진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에 넣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그런데도 도입은 해마다 밀리고 있습니다.
환자는 느는데 백신값은 오롯이 개인 몫
대상포진은 어릴 때 앓은 수두 바이러스가 몸속 신경절에 숨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 다시 활동하는 병입니다. 국내에서 해마다 70만 명 넘게 진단받고, 50대를 넘기면 발병이 가파르게 늘어납니다.
문제는 발진이 아니라 통증입니다. 물집이 사라진 뒤에도 통증이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이어지는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 남을 수 있고, 나이가 많을수록 이 후유증 비율이 올라갑니다.
백신은 두 종류가 쓰입니다.
- 생백신: 1회 접종, 예방 효과 50% 안팎, 접종 비용은 병원마다 다르지만 10만~20만 원 선
- 사백신(재조합 백신): 2회 접종, 50세 이상에서 예방 효과 90%대, 접종 비용 40만~50만 원대
인플루엔자, 폐렴구균 백신은 만 65세 이상이면 보건소와 지정 병원에서 무료입니다. 대상포진 백신은 이 목록에 없어, 지원 사업이 없는 지역 주민은 전액을 자비로 부담합니다.
사는 동네가 접종 여부를 결정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자체 예산으로 이 공백을 메우고 있습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229곳 가운데 약 168곳이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부분적으로 지원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60곳 안팎은 지원이 아예 없습니다.
지원하는 지역도 조건이 통일돼 있지 않습니다.
- 대상 연령: 만 65세 이상인 곳이 많지만 만 70세 이상으로 좁힌 곳도 있음
- 지원 백신: 생백신만 지원하는 곳이 대부분, 사백신까지 지원하는 곳은 드묾
- 지원 방식: 취약계층만 무료인 곳, 일반 어르신까지 일부 비용을 대는 곳이 섞여 있음
같은 65세라도 어떤 지역에서는 생백신을 전액 무료로 맞고, 어떤 지역에서는 2만 원 안팎을 내고 맞고, 어떤 지역에서는 지원 자체가 없어 15만 원을 다 냅니다. 예산이 정해져 있어 신청이 몰리면 그해 사업이 조기 마감되기도 합니다.
건강을 지키는 접종의 문턱이 거주지에 따라 갈리는 셈입니다.
타당성은 입증됐고, 예산이 없을 뿐이다
대상포진 백신의 국가예방접종 도입은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관련 법 개정안도 국회에 발의됐습니다. 질병관리청 연구에서도 고령층 대상포진 백신은 질병 부담과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도입 타당성이 입증됐고, 백신 도입 우선순위 평가에서 생백신은 상위권으로 분류됐습니다.
그런데 예산이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 2025년 국가예방접종 사업 예산은 전년 대비 약 25% 줄었습니다.
- 2027년 질병관리청 예산은 1조 4천억 원대로 편성됐지만, 늘어난 재원은 자궁경부암(HPV) 백신을 9가로 전환하고 남성 청소년까지 접종 대상을 넓히는 데 집중됐습니다.
- 대상포진 백신 도입을 위한 구체적 예산 배분은 이번에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대상포진 백신의 이득이 통증 예방에 그치지 않는다는 연구도 나왔습니다. 국내 의료진이 50세 이상 약 251만 명을 10년가량 추적한 결과, 백신을 맞은 집단에서 알츠하이머형 치매와 기억장애 발생 위험이 더 낮았습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입의 근거는 쌓이는데 재정 결정은 따라오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지금 할 일
제도가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습니다.
먼저 올해 거주지의 지원 여부를 직접 확인하십시오. 시·군·구청이나 보건소 홈페이지에서 '대상포진 예방접종 지원'을 검색하면 대상 연령, 지원 백신, 본인 부담금, 신청 방법이 공고돼 있습니다. 대개 연초에 시작해 예산이 소진되면 마감되므로, 대상이 된다면 미루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지원이 없다면, 50대에 사백신 2회 접종을 우선 고려하십시오. 초기 비용은 크지만 예방 효과와 지속 기간이 생백신보다 뚜렷하게 높고, 면역이 떨어진 사람이나 70대 이상에서는 그 차이가 더 벌어집니다.
대상포진 백신은 증상이 있을 때 치료로 맞는 주사가 아니라, 아프기 전에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입니다. 국가가 비용을 대주는 날까지 기다리는 값은 결국 통증과 자기 부담으로 본인이 치르게 됩니다. 지금 거주지 공고부터 확인하는 것이 그 값을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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