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공단이 지난 4월 시작한 치매안심 재산관리서비스 신청자가 석 달 만에 30배로 늘었습니다. 4월 6명이던 신청자는 7월 184명이 됐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통장을 대신 관리해주겠다는 제도에 왜 이렇게 몰렸는지, 그리고 그동안 이 자리를 채워야 했을 성년후견제도는 왜 외면받았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석 달 만에 30배
숫자만 보면 이례적인 증가세입니다.
- 신청자 수: 2026년 4월 6명 → 7월 184명
- 대상: 치매·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아 재산관리가 어렵거나 경제적 착취 위험이 있는 노인 (기초연금수급자 우선)
- 방식: 신탁계약을 맺고 지원인이 배분계획에 따라 생활비를 집행하며, 대리인이 목돈 지출 등 주요 사항을 대리 결정
- 비용: 기초연금수급자·저소득층은 무료, 그 외에는 연 0.5% 이용료로 최대 10억 원까지 위탁 가능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국민연금공단은 이미 2028년 본사업 전환을 목표로 국회에 계류 중인 치매관리법 개정 논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요양원 같은 생활시설 중심으로 대상자를 찾던 초기 방식에서 복지관과 재가센터로 접점을 넓힌 것도 신청자 급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통장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던 가정들이 이 제도의 존재를 알게 되자마자 몰려들었다는 뜻입니다.
성년후견이 못 채운 자리
이 공백은 원래 성년후견제도가 메워야 했습니다. 2013년 시행된 성년후견은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해 판단능력이 떨어진 사람의 재산관리와 의사결정을 맡기는, 현재로서는 가장 분명한 법적 장치입니다.
문제는 절차입니다. 법원 심리와 후견인 선임에 수개월이 걸리고, 후견인을 누가 맡을지를 두고 형제자매 간 갈등이 불거지는 경우가 잦습니다. 반면 신탁형 서비스는 법원을 거치지 않고 공단과의 계약만으로 시작되며, 자금의 사용처를 미리 제한해 둘 수 있어 특정 가족이 임의로 목돈을 빼 가는 상황을 구조적으로 차단합니다. 느리고 비용이 드는 법적 절차와 빠르고 저렴한 행정 서비스 사이에서 가정들이 후자를 택하고 있는 셈입니다.
100만 명 시대의 계산법
국가가 뒤늦게라도 이 자리에 뛰어든 이유는 규모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2026년 국내 치매 환자: 100만 명 돌파 예상 (65세 이상 유병률 9.25%)
- 경도인지장애 진단자: 2025년 298만 명 → 2033년 400만 명 예상
- 치매 관리 비용: 지역사회 거주 시 연 1733만 원, 시설·병원 이용 시 연 3138만 원
- 돌보는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는 비율: 38~41%
개별 가정이 감당하지 못한 부담은 결국 기초생활보장이나 후견 분쟁 소송 비용 같은 형태로 공적 재정에 되돌아옵니다. 신탁형 재산관리는 그 비용을 사후 처리가 아니라 사전 예방으로 옮기려는 시도입니다. 다만 아직 시범사업 단계여서 지역과 대상 조건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각지대로 남아 있습니다.
치매 진단 직후, 즉 아직 판단능력이 남아 있는 시기가 재산관리 공백이 가장 위험한 구간입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신탁이든 후견이든 본인 의사로 선택할 수 있는 창이 닫힙니다.
치매나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면 진단 즉시 관할 국민연금공단 지사에 시범사업 대상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은행권 신탁 상품이나 성년후견 신청을 미루지 말고 그 자리에서 바로 알아봐야 합니다. 가족에게 미루거나 다음으로 미룰 일이 아니라, 진단서를 받은 그날 확인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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