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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비켜달라는 말도 못 하고 참았다"… 슬로우러닝 길막 논란, 반복되는 이유 총정리

by 디그놋 2026.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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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러닝은 처음부터 갈등을 피하기 위해 등장한 문화였습니다. 빠르게 달리며 보행로를 점거해 온 기존 러닝크루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옆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속도로 천천히 뛰자는 대안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2026년 9월 현재, 서울 곳곳의 산책로에서는 오히려 더 넓은 폭으로 무리 지어 걷다시피 뛰는 슬로우러닝 모임에 밀려난 보행자들의 항의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속도를 늦췄더니 대신 인원이 늘었고, 문제의 본질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번엔 다르다던 약속

확산 속도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 달리기·조깅·마라톤을 주 종목으로 꼽은 비율: 2024년 4.8% → 2025년 7.7%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생활체육조사, 약 1.6배 증가)
  • 당근 산책·달리기 모임 수: 1년 새 2배 이상 증가
  • 서초구 한강공원 일부 구간: 2026년 초 10인 이상 단체 러닝 사실상 금지 조치

이 확산은 이미 한 차례 사회적 갈등을 치른 뒤에 나온 결과라는 점에서 문제적입니다. 서초구가 인원 제한 조치를 내놓은 배경은 빠른 속도로 대열을 지어 달리며 보행자를 위협한다는 민원이 누적된 때문이었습니다. 슬로우러닝은 이 갈등을 해소하겠다며 등장했지만, 실제로는 속도만 낮췄을 뿐 대열의 규모는 오히려 커졌습니다. 수십 명이 보행로 폭을 가득 채운 채 천천히 이동하면, 마주 오는 보행자는 대화가 가능한 속도로 다가오는 무리 앞에서도 몸을 피할 공간을 찾기 어렵습니다.

 

무리는 왜 자꾸 커지는가

이 현상의 배경에는 러닝을 둘러싼 상업적 유인 구조가 있습니다. 국내 운동화 시장은 2021년 2조7761억원에서 2023년 3조4150억원으로 성장했고, 이 중 러닝화 시장만 1조원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은 유명 선수를 내세운 광고 대신 러닝크루 운영자와 인플루언서를 통한 커뮤니티 마케팅으로 전략을 전환했습니다.

크루 하나를 후원하면 수십~수백 명의 활동 회원에게 동시에 브랜드를 노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입장에서 크루의 규모는 곧 마케팅 효율이므로, 크루는 몸집을 키우는 방향으로 움직일 유인을 갖습니다. 슬로우러닝이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신규 참가자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구조와 맞물립니다. 참가자 개인은 소속감과 성취감을 얻지만, 그 무리가 지나가는 보행로의 다른 이용자는 비용을 떠안는 외부효과가 발생합니다.

법은 없고 민원만 쌓인다

현행법상 보행로에서 집단으로 천천히 뛰는 행위 자체를 규제할 근거는 마땅치 않습니다.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는 육로의 교통을 방해한 경우에 적용되지만, 판례는 '불특정 다수의 통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라는 엄격한 요건을 요구합니다. 도로교통법의 보행자 보호 규정 역시 차량 운전자를 겨냥한 조항이어서, 보행로 위 러너들 사이의 충돌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결국 대응은 지방자치단체별 임시 조치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서초구처럼 특정 구간에 인원 제한을 두는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지역은 민원이 접수돼도 계도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 못합니다.

전국 어디서나 적용되는 통일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갈등은 장소를 바꿔가며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슬로우러닝 자체를 막을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대열의 폭과 규모이며, 이는 개인의 배려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사안입니다. 지자체는 서초구 사례처럼 보행로 폭 대비 적정 인원 기준을 명문화한 조례를 전국 단위로 확대해야 합니다. 러닝크루에 속해 있다면, 마주 오는 보행자가 보이는 즉시 대열을 한 줄로 좁히는 규칙을 크루 내부에서 먼저 정해야 합니다.

 

규칙이 없는 무리는 규모가 커질수록 반드시 다음 갈등의 진원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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