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용산구 한강맨션 조합원 694명에게 최근 고지서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재건축이 끝나면 조합원 1인당 평균 6억8000만원을 재건축초과이익환수 부담금으로 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단지 전체로는 4722억원입니다. 집값을 잡겠다고 만든 제도가, 정작 집값이 오른 단지에 가장 무거운 청구서를 안기고 있습니다.
2조원짜리 청구서
국토교통부와 정비업계 집계에 따르면 올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부담금 예정액을 통지받은 서울 단지는 46곳으로 늘었습니다. 작년 37곳보다 9곳 늘었고, 총 부담금은 2조169억원에 달합니다.
- 반포3주구(래미안트리니원): 5149억원, 1인당 약 3억2000만원
- 용산 한강맨션: 4722억원, 1인당 약 6억8000만원
- 신길10구역: 1435억원, 1인당 약 2억6000만원
상위 3개 단지가 전체 부담금의 52.1%를 차지합니다. 지역별로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만 25곳(54.3%)이 몰려 있습니다. 재건축 사업성이 좋아 조합원 이익이 클수록 부담금도 커지는 제도 설계 탓입니다.
오를수록 커지는 세금
재초환은 조합원 1인당 초과이익이 8000만원을 넘으면 구간별로 10~50%를 부담금으로 매깁니다. 문제는 이 초과이익이 실제로 손에 쥔 현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신보연 세종대 교수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대해 현금으로 부담금을 내야 한다"는 점을 제도의 핵심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집을 팔아 차익을 얻기 전인데도, 시세가 오른 만큼 세금부터 내야 하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는 역설을 낳습니다. 반포3주구 전용 84㎡는 부담금 통지 전인 7월 50억4300만원이었던 시세가, 통지 이후인 8월 57억원으로 한 달 새 6억원 넘게 뛰었습니다. 조합원들이 앞으로 낼 부담금을 매도 호가에 얹어 팔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집값을 억제하려는 제도가 오히려 매매가·전세가를 밀어 올리는 셈입니다.
폐지 법안은 국회서 잠들어 있다
재초환은 2006년 처음 도입됐다가 시행이 유예됐고, 2018년부터 실제로 부과되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개정으로 장기보유 1주택자 감면, 고령자 납부유예 등 보완이 있었지만, 부담금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는 여전합니다.
국회에는 재초환을 전면 폐지하거나 부담금 감경 요건을 넓히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돼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2년 가까이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채입니다. 형평성 논란과 세수 감소 우려가 맞서면서 여야 모두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통지서를 받아 든 조합원 수만 매년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정비사업 지연은 이미 공급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담금이 무서워 사업을 미루거나 일반분양 물량을 줄이는 조합이 늘면, 그만큼 신규 입주 물량도 줄어듭니다.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 방침과, 재건축 이익을 환수해 집값을 잡겠다는 제도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재건축 아파트를 보유했거나 매수를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매매가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해당 단지의 재초환 부담금 예정액과 조합원별 추정 부과액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정비사업 조합 홈페이지나 정비계획 공람 자료에 부담금 추정치가 공개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도자가 부담금을 매도가에 이미 반영했는지, 반영했다면 실제 실현 가능한 시세인지를 따져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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